抽象, ABSTRACT, 추상
- 작성일
- 2024.10.26 17:54
- 등록자
- 박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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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강운이 그리는 형상과 색들은 이원적이지만 중의적이고 이내 합일을 이루어 궁극에는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작가의 시선은 구름이나 물방울, 공기와 같이 항상성보다는 가변적인 연약한 대상에 머물러 있으며 상처나 아픈 기억들이 작가로부터 출발하여 이러한 대상들에 투사되고 종내는 관조와 사유, 치유의 방식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회화에서 추상화(抽象化)의 과정은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권력적인 로고스로부터가 아니라 가장 여린 모습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대상에 잠기면서 점차 자신의 몸에 물들어가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파랑> 연작은 여수의 장도라는 섬에서 진행된 레지던스기간 동안에 그려진 것이다. 이 연작은 3백여 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여수 바다의 색인 동시에 날씨와 바람에 따라 파도가 일고 포말을 튕기며 천태만상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하나의 붓으로 그린 점이나 획이 점차 번져나가는 기법으로 그려낸 추상화이다.
파랑-모개도_34x28.5cm_종이에 담채_2022
파랑-건너도_34x28.5cm_종이에 담채_2022
신 도 원 Shin, Do-won
신도원의 <자연생성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몇 겹의 드로잉으로 그려왔으며 컴퓨터를 이용하여 3D 미디어회화로 변환시킨 뒤 미디어아트로 완성시켰다. 구름 생성기, 코끼리, 로봇토끼, 식물이나 알 수 없는 기호와 텍스트 등이 그려진 그의 평면 드로잉은 1초에 30여 작품이 유영하듯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매우 거친 선으로 그려진 형상들은 마치 카오스적인 세계에서 이제 하나씩 생성되고 있는 듯한 원시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이 평등하게 공존하고 있는 문명 이전의 순수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연서, 100x100, 한지에 채색, 2024
연서, 100x100, 한지에 채색, 2024
정 정 주 Jeong, Jeong-ju
정정주는 건축의 창과 파사드, 기둥, 계단 등의 구조물을 통해 만들어지는 빛의 움직임과 형태를 입체적인 빛의 구조로 추상화하여 시각과 응시의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소외나 갈등과 같은 인간의 심리적 요소부터 초월적 존재인 숭고에 이르기까지 그 실재와 상징적 의미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작가이다.
정 송 규 Jung, Song-kyu
정송규의 추상화는 조각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랜 조형적 실험을 거친 후에 오방색의 색면들이 단색조의 색면이나 편린으로 쪼개져서 기하학적 요소인 작은 점으로 변화되었다. 처음에는 색면 속에 어머니의 초상이나 장독대 같은 형상들을 품었으나 점차 미니멀한 추상형식으로 변화되었다. 흑백 도트로 이루어진 후기 추상화에서는 수묵화처럼 넉넉한 여백이 존재하며 엄격한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살아남아 호남지역 1세대 여성 추상작가로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작가 내면의 강한 기조와 자유로운 환희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Delight -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부분1), 캔버스에 유채, 200x134cm, 2015
조 영 대 Cho, Yung-dae
조영대의 회화는 어머니의 보자기를 모티브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추상화이면서 동시에 정물화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추상회화에 보자기라는 정물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모란디 (Giorgio Morrand)의 정물화를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선과 색과 빛이 여백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대상의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는가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그의 <어머니의 보자기>라는 추상화는 적당한 마띠에르가 있는 그림의 표면과 물감을 계속해서 쌓아올려 형성되는 두께를 지닌 입체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어머니의 보자기에 표현된 선과 색면은 그가 이전에 풍경화나 들꽃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인상파적인 빛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들인데 이러한 사실은 추상이 인상파에 나타난 빛의 거친 입자 덩어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원론적인 회화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어머니의 보자기-선>시리즈는 단색조 바탕에 그림의 표면을 도구로 깊게 파내면서 형성되는 수직의 서정적인 선들이 달리고 있는데 이것은 바탕에 깔려 있는 깊이가 검은색 혹은 푸른색으로 표면 위로 올라온 것들이다. 두터운 물감의 깊은 바탕으로부터 살갗으로 올라오는 선의 본질은 모든 인간의 그리움과 슬픔의 원천이자 근원인 모성성을 나타내고 있다.
어머니의 보자기, Oil on canvas, 125x125cm, 2021~2024(8)
한 정 식 Han, Chung-shik
한정식은 지표가 뚜렷한 사진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존재의 본질과 근원의 문제로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에 의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고요’의 미학적 방식이기도 하는데, 바로 풍경의 추상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선택하는 풍경은 강원도 원주, 경기도 가평, 황악산 직지사 등의 구체적인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공간을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지표를 그는 의도적으로 지워버림으로써 추상화시킨다. 물, 바람, 나뭇잎, 공기, 돌, 파도 와 같은 자연의 흐름은 셔터와 함께 이미 과거 시공의 세계로 죽음을 맞이하고 고요와 적막, 다시 말해 동양 철학의 바탕인 공(空)의 세계로 회귀한다. 동양철학에서 공의 의미는 ‘비어 있는 것’,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슬픔의 근원을 마주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추상화된 사진에 나타난 ‘고요’의 미학은 이 근원을 마주하게 만드는 갈라진 틈-바르트가 이야기한 푼크툼의 세계-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