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리 탄도마을 - 청정 여울도
- 작성일
- 2016.08.03 10:39
- 등록자
- 조OO
- 조회수
- 1349
첨부파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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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는 송현리 조금나루에서 직선거리로 3㎞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16만여평, 해안선 길이는 4.5㎞. 그리고 남과 북의 길이는 1㎞ 정도이며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행정구역명으로는 망운면 탄도리 탄도 마을이다.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배가 물때(아침 저녁으로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때)에 따라 하루에 두 차례씩 조금나루와 연결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10분에서 20여분이 걸린다.
문헌으로 지명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자료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현화면 炭島리로 나온다. 이후 일제강점기 자료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다 1987년 행정구역일람에서 망운면 탄도리 탄도로 나온다.
炭島가 아닌 灘島로 표기해야
‘탄도’라는 지명의 유래를 보면 원래 나무가 무성하여 숯을 많이 산출하므로 탄도(炭島)라 하였다고 이야기들 하나 지명의 한자 표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섬의 크기로 봤을 때도 숯을 만들 만큼의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문헌상으로 炭島라고 표기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식으로 표기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지형상으로 봤을 때 탄도를 사이에 두고 서해안의 물줄기가 운남면과 망운면으로 갈리어 나가는 여울목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원래 지명이 ‘여울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숯섬’을 뜻하는 ‘炭島’ 보다는 ‘여울목’을 뜻하는 ‘灘島’가 적합한 표기라 여겨진다. 마을유래지에도 ‘여울도’라 부르다가 ‘숯’이 많이 나는 섬이라고 하여 ‘炭島’라 칭했다고 했으나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마을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김해김씨 김약휘(1623 - ?. 자-문중)다. 병자호란을 피하여 함평군 나산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분수를 지켜 자연과 벗하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하나 기록은 없다. 현재 김해김씨 외에 강씨, 박씨, 이씨 최씨 등 20여 가구 50여명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주산인 왕령산(안개산으로 부르기도 한다)을 포함하여 돌개산[石犬] 용머리산 어바우산 덤벅산 작은모시리산 등의 크고 작은 산이 있다. 준나리 어덕과 대포리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은 천연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으며 준나리 어덕에서 야광주산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은 노을빛에 보면 금빛 모래로 이루어진 길이다. 특히 왕령산은 산이 별로 없는 망운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또한 왕령산 뒤쪽에서 나오는 생수는 칠산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에게는 반드시 챙겨야할 식수였다. 왜냐하면 이물은 한 달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은 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왕령산 뒤쪽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밑에는 당산제를 지낼 때 사용했던 당산샘이 있기도 했다. 제를 지내기 전 제관들은 이 샘에서 목욕재계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비린 것을 멀리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어느날 주민 중 한 사람이 당산나무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무를 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 그 사람에게는 후손이 생기지 않아 斷孫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섬을 에워싸고 있는 뻘은 섬 주민들에게 귀중한 농장이 되고 있다. 오염원이 없을 뿐 아니라 황토와 갯벌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기에 맛과 질에서는 전국에서 최고다. 이 뻘에서 생산되는 낙지와 감태는 오래 전 수산부가 주최하는 전국 맛 품평회에서 당당히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해서 옛날부터 탄도감태와 탄도낙지라 하면 최고의 값을 받고 팔렸으며 조선시대 진상품 목록에도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탄도만 주변에서 생산되는 각종 어패류는 무공해 건강식품으로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마을에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자동차는 없고 경운기와 오토바이 뿐이다. 골짜기마다 계곡마다 해변가마다 어디를 봐도 쓰레기나 오물이 없다. 집집마다 나오는 생활하수는 하수처리시설을 만들어 처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마을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합쳐져 울력으로 매달 섬 전체를 아우르는 청소를 실시하고 있어 나온 결과이다. 현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외지 사람이 적으나 그래도 피서철이 되면 이곳의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청정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섬에는 야광주라는 작은 섬이 딸려 있다. 예전에 이곳에 불을 켜서 주변을 왕래하는 배의 항로를 밝혀준 적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여의주라 부르는데 그것은 용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섬에서 보면 칠산 바다 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맥을 ‘용머리’라 부르는데 그 앞에는 둠벙(용샘)이 있고 그 너머에 이 작은 섬이 있어서 마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놀고 있는 듯한 지세(地勢)를 보이고 있다.
명당이 있다
탄도와 마주보고 있는 육지가 운남면 내리이다. 내리의 범바위와 탄도의 용머리, 그리고 송현리 조금나루의 칼(청룡도) 사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서해안을 건너 한양으로 올라가 꿈을 펼치려는 운남의 호랑이와 이제 막 100년을 기다려 하늘에 승천하려는 여울도의 이무기가 서로 상대를 겨누며 마주하고 있다. 용호상박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조금나루의 청룡도가 나서 둘 사이에 칼을 겨누고 있다. 해서 둘 사이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이런 용호상박의 지형에는 어딘가에 뛰어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혈처가 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조그만 마을에서 배출된 인물이 많다. 판사와 변호사등 3명의 고시합격자를 포함하여 광주씨티병원장 삼성병원의사 교사와 공무원 등 어느 마을 못지않은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또한 용머리를 볼 수 있는 왕령산 기슭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 없어져서 볼 수는 없었으나 주변에서 깨어진 기와조각이 많이 나오고 중이 물을 먹었다는 ‘중샘’이란 지명 등이 있어 해양신앙과 가까운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 외의 지명으로 섬에서 현경 쪽을 바라보면 두 개의 바위가 아스라이 보이는데 주민들이 ‘한산녀바위’, ‘후녀바위’라고 부른다. 지명의 유래가 재미있을 것 같아 알려고 했으나 아는 사람이 없다.
특이하게도 금년에는 벼를 심지 않았다. 마을 어디에도 벼를 볼 수가 없다. 이유를 물어보니 벼를 심으면 경작비가 훨씬 더 많이 든다고 한다. 해서 금년부터는 주민들 스스로가 벼농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1952년에 작성된 ‘망운면 탄도리 토지대장’이 1970년대 초 마을 이장을 역임했던 이남주 어른 댁에서 나왔다. 당시 주민들의 토지 소유 상황이 나오는데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당시 마을 곳곳의 지명이 나온다는 점이다. 살펴보면 대포리(大浦리) 內基口 모실리 명덕곡 村田基田 동북정(땅금이) 야천리 於岩(어바우) 굿치석 들샘이 소모실리 용모리(용머리) 등이다. 예전에 배가 다니기 전에는 섬에서 송현까지 걸어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열목’이라 불렀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의 자료를 보면 바다와 접해 있는 경사면에서 다량의 회청색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의미 있는 유물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밭 곳곳에 그물이 처져 있다. 고라니와 노루 등의 산짐승 폐해를 막기 위해서다. 사실 작년에는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4마리의 맷돼지를 주민들이 잡기도 하였다. 마을 곳곳에서 육지에서 물을 건너 들어온 뱀이나 맷돼지 고라니 노루 등을 볼 수 있다.
1956년에 설립되어 2001년에 폐교된 망운서초등학교 탄도분교가 있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도시에서 온 이 학교 선생님과 이 마을 처녀가 서로 사랑을 하여 결혼까지 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즐겨 부르는 가요인 섬마을 선생님의 모델 같은 실화이다. 새탄도교회와 주민들이 운영하는 낙지축양장이 있다.